OPEN NOTE 열린옷장 생각노트


아무노트안 입는 옷, 드시는 건 어때요?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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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면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는 특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름옷으로도 가득 차는 다용도실 공간에 두꺼운 겨울옷을 다 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처분 대상이다. 길이가 애매해서, 색깔이 안 받아서, 밑위가 너무 짧고 유행이 지나서, 목이 너무 늘어나서 등 손이 안 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또 매번 비슷하다. 이런 옷들은 어디서 매년 튀어나오는 건지, 대체 왜 산 건지 의아할 따름이다.

 

옷걸이에서 옷들을 빼다가 빨간 남방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천에 하얀 선이 줄줄이 놓인 디자인이고 여름에 입기에는 좀 뻣뻣한 소재의 셔츠였다. 착용감이 별로고 태도 안 나서 입은 기억이 없다시피 하지만 보기에 예뻐서, 언젠간 입겠지 하며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안 입겠지만 쓸만한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기로 하고 이 셔츠는 버리긴 아까운데 계속 둬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이소연 작가의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읽게 되었다.

 

책은 내가 하는 고민을 비롯해 현대 의류 산업 전반을 다룬다. 의류 수거함이라는 리사이클링의 진실, 방글라데시에서부터 한국에 옷이 도착하기까지의 과정, 울트라 패스트패션의 이면, 명품(사치품) 시장의 명암, 기후위기 세대로서 의류 산업을 대하는 자세 등 관련 분야 경력과 자기 삶을 녹인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이제 4월이면 ‘라나플라자’를 기억할 것이고 ‘21%파티’에도 기웃거릴 테다. 책의 마지막쯤에는 이미 산 옷을 (그나마) 친환경적으로 처분하는 방법 몇 가지를 알려 주는데 그중 내가 고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남방셔츠로 에코백을 만들었다. 도안과 제작 순서는 유튜브에서 찾았고 회사에 미싱기가 있어서 실행에 옮기기 쉬웠다. 미싱기를 만져 본 적도 없었으나 일하면서 익힌 스쿠이 실력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싱기 작동법은 직장 동료에게 배웠다.

 

그렇게 완성된 에코백을 출퇴근 때 종종 손에 들고 다닌다. 내가 쓸 물건을 직접 만드는 일의 최대 장점은 맞춤에 있다. 평소에 자주 쓰는 숄더백의 손잡이 길이를 그대로 가지고 오니 어깨에 걸었을 때 안정감이 들어 좋고, 늘 가지고 다니는 잡지 사이즈로 재단하니 구겨진 글자를 읽지 않아도 되었다. 또 셔츠 주머니를 그대로 붙여서 휴대폰이나 이어폰을 넣을 수 있는 실용성을 챙기고 어울리는 단추를 달아 미감까지 갖추었다. 마감이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니 애착이 생기고 성취감도 들었다. 그리고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서 주변에서 칭찬도 후하게 해 준다.

 

한번 해볼까? 가볍게 했던 생각이 실현되기까지 주변에서 꽤 많은 도움이 있었다. 구상을 이야기하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떠냐며 아이디어를 주고 재단 가위도 빌려주어 진짜로 만들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고, 막상 만들려 하니 오버로크 기계가 없어 난감했는데 오버로크 효과를 낼 수 있는 팁을 공유해준 덕분에 미싱기만으로도 재봉선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일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빨간 에코백은 당시의 나를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기록물이 되었다. 그 가방이 너에게 무슨 의미이냐 누군가 물으면 조잘조잘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표현수단. 열린옷장의 옷들도 저마다 기록이 담겨있다. 앞으로 더 많은 옷이 옷장에 찾아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더 널리 공유되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표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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