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모임 호스트가 되기 전부터 나는 주제를 ‘고전’으로 하고 싶었다. 나에게 고전은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룬 숙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약속했으니 꼭 읽어야 하는 이때가 기회라고 여겨졌다.
회사 근처 교보문고로 가 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대에 10여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뭐가 좋을지 표지를 하나씩 뒤적거리고 있는데 판대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이것도 한 번 읽어야 되는데” 친구에게 말하면서 달과 6펜스를 손에 드는 게 아닌가. 고전 문학 판대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묘한 공감이 일었다.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신비로운 제목과 광기 어린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끌렸다.
사실 달과 6펜스는 혼자서 읽을 때보다는 모임 때 여럿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초반의 지루한 배경 설명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개성 강한 인물들은 몰입을 방해하는 걸림돌이었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스트릭랜드, 더그, 블란치의 인생을 보고 덩달아 심란해진 마음을 대화로 풀며 나눌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본격 대화 전, 각자 책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를 3가지 꼽아 종이에 적기로 했는데 겹치는 키워드가 하나도 없어서 놀라웠다. 또 각자 인상적인 문단을 미리 적어오기로 했는데 그것도 같은 구절이 없었다. 같은 텍스트를 읽었는데 이렇게나 생각이 다들 다르다니! 독서클럽의 의미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고전을 왜 읽는가. 왜 고전에서 지혜를 구하는가. 그건 아마도 이번에 경험했듯, 고전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긴 서사가 지닌 사건들, 관계들, 감정들이 독자마다 필터를 거쳐 수천수만 가지의 이야기로 뻗어 나가며 계속 세계를 키워가는 모습이 마치 영원을 사는 듯하다.
이름
마음에 남은 문단
:감상
가연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10-11p)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p)
:자신의 것을 하는 사람의 눈은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결말이 그다지 좋지 않을 거란 예감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눈빛에 매료되고 사랑에 빠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안다. 비록 나는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반기지 못한, 그림에 너무 매몰되어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잃은 건 아닌가 생각이 들게 만든 인물로 남았지만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독서였다.
지은
세상에 괴짜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그는 동그란 구멍 속에 박힌 네모난 못과 같은 것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온갖 형태의 구멍이 존재했고, 어떤 형태의 못이라도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다.(206p)
:내가 가진 도덕적인 관점으로 책을 읽다보니, 화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책에 대한 마음의 벽도 높아졌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옷장지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엄청난 괴짜같은 스트릭랜드의 말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선함과 도덕적 옳음을 좇아가지만, 많은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책의 이야기를 제법 이해해나갔다.
정아
나는 어깨만 으쓱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블란치 스트로브에게 전혀 동정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의 그런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더크가 더욱 고통스러워 할 것임이 분명했다.(154p)
:스트릭랜드만 그런 게 아니다. 책 속 인물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서로가 이해 되지 않는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 사람은 자꾸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이해되지 않더라도 보통은 이런저런 이유로 내색하지 않겠지만 스트릭랜드는 아닌 척을 견딜 수 없다. 그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맨땅에 헤딩할 수 있을 만큼, 남들과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충동적이고 강렬한 열망이란 어떤 느낌일까?
도빈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늘 같은 원을 새롭게 돈다.(2장 끝)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 남성이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짓밟은 여성의 삶에 대해 말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시선 끝에는 자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인이 사랑하는, 자신이 닮고 싶은 그 남자를 끌어안는 한 기구한 남자에 대해서 말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암묵적인 약속을 모두 부수고, 결국엔 구원받을 수 없는 병에 자기 자신마저 제물로 바쳐가며 완성해야했던 한 사람의 예술성을 이해하려 애쓰기 위해 얘기를 나눴다. '달과 6펜스'는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끌어낼 수 있기에 고전이라는 칭호를 받는게 아닐까. 1919년에 출판된 서머셋 몸의 이 소설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줬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인생에 대해 웅성거렸을 것이다. 그 날 저녁 우리가 그랬듯이. 그렇게 살아도 되는것이냐며. 좌우로 흔들리는 우리는 늘 같은 원을 새롭게 돌고있다. "소박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사랑을 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다 합친 것보다 나아. (…)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38장 중) 서머셋 몸은 웅성거리는 우리에게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은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敵)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14-85p)
:어느 시대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 마련이다. 인간은 겁이 많은 생명체라서. 함께 있는 울타리 안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두려워하고 무서워라고 배척해간다. 규칙이 숨 막히도록 답답하더라고, 모두와 다르지 않는 정상이라는 안정감을 동시에 느낀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주변인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사정만 생각해서, 참 쉽게 혹은 잔인하게 행동했다. 차라리 가족이라는 책임을 지기 전에 떠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꽤나 자유로운 생활을 보내왔지만, 예술 혼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혼돈이었다. 옷장지기들과 이야기 나누며 스트릭랜드가 이해될 것 같으면서도, 결국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이번 모임 호스트가 되기 전부터 나는 주제를 ‘고전’으로 하고 싶었다. 나에게 고전은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룬 숙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약속했으니 꼭 읽어야 하는 이때가 기회라고 여겨졌다.
회사 근처 교보문고로 가 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대에 10여 권의 책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뭐가 좋을지 표지를 하나씩 뒤적거리고 있는데 판대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이것도 한 번 읽어야 되는데” 친구에게 말하면서 달과 6펜스를 손에 드는 게 아닌가. 고전 문학 판대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묘한 공감이 일었다.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신비로운 제목과 광기 어린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끌렸다.
사실 달과 6펜스는 혼자서 읽을 때보다는 모임 때 여럿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초반의 지루한 배경 설명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개성 강한 인물들은 몰입을 방해하는 걸림돌이었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스트릭랜드, 더그, 블란치의 인생을 보고 덩달아 심란해진 마음을 대화로 풀며 나눌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본격 대화 전, 각자 책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를 3가지 꼽아 종이에 적기로 했는데 겹치는 키워드가 하나도 없어서 놀라웠다. 또 각자 인상적인 문단을 미리 적어오기로 했는데 그것도 같은 구절이 없었다. 같은 텍스트를 읽었는데 이렇게나 생각이 다들 다르다니! 독서클럽의 의미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고전을 왜 읽는가. 왜 고전에서 지혜를 구하는가. 그건 아마도 이번에 경험했듯, 고전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긴 서사가 지닌 사건들, 관계들, 감정들이 독자마다 필터를 거쳐 수천수만 가지의 이야기로 뻗어 나가며 계속 세계를 키워가는 모습이 마치 영원을 사는 듯하다.
이름
마음에 남은 문단
:감상
가연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10-11p)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p)
:자신의 것을 하는 사람의 눈은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결말이 그다지 좋지 않을 거란 예감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눈빛에 매료되고 사랑에 빠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안다. 비록 나는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반기지 못한, 그림에 너무 매몰되어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잃은 건 아닌가 생각이 들게 만든 인물로 남았지만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독서였다.
지은
세상에 괴짜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그는 동그란 구멍 속에 박힌 네모난 못과 같은 것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온갖 형태의 구멍이 존재했고, 어떤 형태의 못이라도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다.(206p)
:내가 가진 도덕적인 관점으로 책을 읽다보니, 화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책에 대한 마음의 벽도 높아졌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옷장지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엄청난 괴짜같은 스트릭랜드의 말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선함과 도덕적 옳음을 좇아가지만, 많은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책의 이야기를 제법 이해해나갔다.
정아
나는 어깨만 으쓱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블란치 스트로브에게 전혀 동정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의 그런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더크가 더욱 고통스러워 할 것임이 분명했다.(154p)
:스트릭랜드만 그런 게 아니다. 책 속 인물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서로가 이해 되지 않는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 사람은 자꾸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이해되지 않더라도 보통은 이런저런 이유로 내색하지 않겠지만 스트릭랜드는 아닌 척을 견딜 수 없다. 그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맨땅에 헤딩할 수 있을 만큼, 남들과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충동적이고 강렬한 열망이란 어떤 느낌일까?
도빈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늘 같은 원을 새롭게 돈다.(2장 끝)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 남성이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짓밟은 여성의 삶에 대해 말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시선 끝에는 자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인이 사랑하는, 자신이 닮고 싶은 그 남자를 끌어안는 한 기구한 남자에 대해서 말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암묵적인 약속을 모두 부수고, 결국엔 구원받을 수 없는 병에 자기 자신마저 제물로 바쳐가며 완성해야했던 한 사람의 예술성을 이해하려 애쓰기 위해 얘기를 나눴다. '달과 6펜스'는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끌어낼 수 있기에 고전이라는 칭호를 받는게 아닐까. 1919년에 출판된 서머셋 몸의 이 소설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줬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인생에 대해 웅성거렸을 것이다. 그 날 저녁 우리가 그랬듯이. 그렇게 살아도 되는것이냐며. 좌우로 흔들리는 우리는 늘 같은 원을 새롭게 돌고있다. "소박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사랑을 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다 합친 것보다 나아. (…)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38장 중) 서머셋 몸은 웅성거리는 우리에게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은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敵)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14-85p)
:어느 시대든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 마련이다. 인간은 겁이 많은 생명체라서. 함께 있는 울타리 안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두려워하고 무서워라고 배척해간다. 규칙이 숨 막히도록 답답하더라고, 모두와 다르지 않는 정상이라는 안정감을 동시에 느낀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주변인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사정만 생각해서, 참 쉽게 혹은 잔인하게 행동했다. 차라리 가족이라는 책임을 지기 전에 떠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꽤나 자유로운 생활을 보내왔지만, 예술 혼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혼돈이었다. 옷장지기들과 이야기 나누며 스트릭랜드가 이해될 것 같으면서도, 결국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