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NOTE 열린옷장 생각노트


아무노트독서모임은 처음이라

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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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지 않는다. 그저 쭉 읽고, 좋았던 부분은 마음속으로만 되새기며 책을 덮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들과 함께 읽는 책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인덱스를 붙여가며 읽고 있었다. 이게 바로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는 책’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의 첫 번째 사회자가 된다는 생각에 많이 떨렸다. 주제 선정부터 책 고르기, 진행까지 모든 것이 내게 달려 있다니!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이번 모임의 키워드는 ‘뮤턴트’로 정하였고, 함께 읽을 책으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어둠의 속도>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책임이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내 생각과 감정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함께했다.


정상과 비정상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영상도 찾아보고, 글도 읽어보니 공통적으로 발제문을 작성하길래 나도 따라서 한 권당 3개의 질문을 만들어 보았다. <어둠의 속도>를 읽으며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소설의 진행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루가 직장동료, 친구들, 이웃들을 대하는 방식이 낯설었는지 궁금했다. 두 번째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루의 고찰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묻고 싶었다. 루가 느끼는 경계선은 우리 각자도 삶에서도 경험했을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질문은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의 선택에 가장 공감했는지를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각자 다른 의견들이 쏟아졌다.


존재의 의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호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와 작가는 왜 그를 알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첫 번째 질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룰루 밀러가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이 책을 읽은 옷장지기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는지를 물었다. 마지막 질문은 ‘여러분에게 물고기는 무엇인가요?’ 였다. 사실 이 질문은 명확하게 답을 알지 못하겠어서 정말 질문처럼 던진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옷장지기들의 소감으로 대신한다.


루가 자신의 속도로 세상을 이해하듯, 우리는 각자 다른 속도로 책을 이해했다. 빠르고 느리게 나누는 생각 안에서 천천히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혼자서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것들이 대화를 통해서야 깊어짐을 느꼈다. 서로의 생각이 모여 더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은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큰 배움이었다. 서로 속도를 맞춰가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따뜻했다. -해인


인생 첫 독서클럽. 처음의 특권인 새로움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독서클럽이 이제 일련의 흐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겠지.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분에 서로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 농담과 웃음, 눈짓과 목소리 모두 따듯했다. <어둠의 속도>에서 루가 다니는 펜싱클럽처럼 일상을 더 풍부하게 해줄 장미같은 모임이 되기를. -정아


처음 접해보는 장르라 설렘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설렘과 기대를 끝까지 가져가진 못했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책을 덮었다. 나에게 물고기란 무엇일까. 결코 거스를 수 없는 혼돈의 세상을 살면서 인생은 의미 없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의 인생은 펼쳐진지 얼마 안되어 더 지나서야 알 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 앞으로 물고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에 빠질 것 같다. 의미가 있어도 없어도 소중한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고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내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은 같은 맥락으로 다가왔어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되려 의미가 없어질 때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에 대해서 말이죠. “결국, 여기에, 답이 있다”라고 두 작품 모두 말합니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서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끼기도 하고 무가치하게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느 단계에 있더라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 바로 여기를 직시하고자 노력한다면 어쩌면 오만해지지도, 삶이 무의미하다고 주저앉지도 않을지 몰라요.

멀리 가려면 같이 가고, 책을 많이 읽으려면 다른 책을 읽은 이와 대화하라고 하더군요. 내가 읽지 않아도 그 책을 읽은 것만 같은 충만함, 독서모임의 매력입니다. -도빈


성인이 되고 나의 가치관과 자아가 확립되어 갈 때부터 별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너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냐는 말도 종종 들었다. 그런 말들은 내가 지켜나가는 신념들을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뮤턴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고른 '어둠의 속도'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우리는 책에 관련된 느낀 점과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을지 몰라도 돌연변이를 칭하는 뮤턴트를 보는 시선은 묘하게 모두 다정했다. 어떤 순간에 누구나 뮤턴트가 될 수 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은




왜 '뮤턴트'였을까


"가연님은 왜 '뮤턴트'라는 주제를 정했고, 이 두 책을 추천하셨어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처음 주제를 정한 순간부터 가장 잘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답을 바로 내놓지 못했다. 

돌아가는 길에 계속 생각해 보니, 의외로 빠르게 답이 떠올랐다. 


룰루 밀러는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재정립해 나간다. 루 또한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변화와 변이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찾아가고, 모든 결과는 루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과학적 변화의 문제를 접어두고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더 집중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남들보다 못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남들보다 하나씩은  느리고, 결과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최근에야 내 자신을 관심있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별로인 것들이 조금 덜 별로가 되기만 해도 괜찮다는 걸 알았고, 새로운 것들이 덜 두려워졌다. 옷장지기가 된 것도 그런 변화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들 속에서 나오는 ‘변이’가 단순히 겉모습이나 생물학적 특성만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뮤턴트’라는 주제를 고른 것도 이런 이유였던 거 같다. 나도 내면의 변화를 겪고 있고, 그 변화의 감정을 글로도 공감하고 싶었나보다. 


독서모임은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함께 이야기하고, 또 나 혼자서도 곱씹으며 생각해보는 과정까지가 모두 독서모임이라고 느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벌써부터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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